정조 능행길은 원래 시흥 방향이 아니고 지금의 남태령을 넘어 과천과 인덕원을 거쳐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1795년 거둥길은 이 길을 피하고 시흥길을 택하였다. 그 주된 이유는 당시 남태령길을 닦는 것이 힘들어서였다.
한편, 야사에 의하면, 능행차길은 과천을 거쳐 인덕원으로 가는 도중에 찬우물점을 거치게 되는데 이곳에 김약로(金若魯 1694~1753) 무덤이 있어 이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김약로는 노론의 영수로서 장조의 죽음에 깊이 관여한 김상로(金尙魯)의 형이다.
새로 선택된 시흥길은 언덕이 적은 편이어서 길을 내기가 비교적 쉬웠다. 이 길을 만들기 위해 경기감사 서용보(徐龍輔)가 책임을 맡았고, 평안도의 남당성(南塘城) 공사에 쓰고 남은 돈 1만 3천 냥을 투자하여 완성하였다.
이 도로는 순조 때에도 계속 확장되어 마침내 전국적으로 10대로(大路)에 들어가는 간선도로가 되었다.
※ 순례 때는 보신각 대신 광화문 앞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