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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역사이해 정조대왕 능행차의 유래

정조대왕 능행차의 유래

능행차 사진

정조는 1789년에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拜峰山)에서 화산(花山, 지금의 화성시)으로 이장하여 현륭원(顯隆園)이라 칭하고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현륭원을 참배하였다. 정조는 재위 24년간 66회의 행행을 하여
1년 평균 약 3회를 기록했고, 아버지 묘소 참배가 그 절반을 차지하였다.

정조는 행행 중에 3,355건의 상언(上言)이나 격쟁(擊錚)을 처리하였다. 상언이란 백성들이 임금을 직접 만나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을 말하고, 격쟁은 행차 중에 징을 치고 나와서 왕에게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원행에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가 따랐다. 우선 대규모 인원이 이동하려면 자연히 길을 닦고 다리를 건설 혹은 보수하게 되어 치도(治道)의 효과가 있었다. 또한,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가면서 수도권의 방위체제를 점검하고 군사들을 훈련하는 기회로도 활용하였다. 이밖에도 왕은 현지에 가서 별시(別試)를 시행하여 지방의 인재들을 수시로 발탁하여 등용하였다. 그러므로 왕의 궁밖 나들이는 지역사회 발전과 지방민의 사기진작에 적지 않은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특히 1795년(정조 19)의 현룽원 방문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로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큰 능행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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